본문 바로가기
일상/주저리

[주저리/일기]난 무엇때문에 기분이 이리 상했을까

by 수다정이 2024. 3. 13.
728x90

며칠 동안 예민함이 MAX에 도달해 있었는데

결국 어제 도를 넘어서버렸다

 

내 남은 인생에 계속 남아있을 것 같던 친구들 청모(청첩장 모임)를 정하면서

허무함과 현타가 느껴지기 시작하더니

결국 남편한테도 실망감이 커져버렸다

 

한 무리에서 나와 남편을 제외하고도 다른 커플이 결혼예정이다

9명의 사람들이 여러번 모이기에는 힘드니 

한 번으로 해도 괜찮겠냐고 물었고

일정 투표를 하기 시작했다

 

아직 내 나이가 어려서 친구들 또한 결혼과 먼 나이라서 그런지

청모를 단순 밥 먹는 자리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

어차피 다들 찬성할 텐데 한 번으로 하는 것 또한 투표를 왜 받냐며 묻는 사람도 있었고

 

나머지 모두 일정 투표가 끝났는데

마지막 한 명이 읽고 대답도 없다가

안된다는 얘기만 하더라 

 

힘이 다 빠졌다

 

인원수가 많고 다른 친구들의 결혼식으로 일정이 촉박한 상황이라

빨리 정하고 싶었는데 나만 급했고

나만 생각이 많았나 보더라

 

친한 친구들이라 비싼 곳에서 근사하게 대접해주고 싶었던 내 마음이

한 순간에 박살나는 순간이었다

 

다행히도 모두 되는 날짜를 찾긴 했지만

투표를 다시 올리는 과정에서

같이 돈을 내기로 한 커플들만 투표를 안 했길래

따로 만든 단톡에 해달라고 부탁했다

심지어 카톡을 읽고도 하지 않았길래 말했었던 것이다

 

하지만 남편이 애들도 바쁜데 재촉하지 말라더라 

그 순간 열이 끝까지 났다

 

재촉이라고 생각도 못했고

재촉이었더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

 

어차피 다 같이 하는 일인데

내가 나서서 정해주고 있고

모두 직장 다니는 입장에서 나는 무조건 기다려야 줘야 하는 사람이란 건가? 

 

재촉하지 말라는 그 카톡을 본 순간

다양한 감정이 들었던 것 같다

 

내가 얘기를 꺼내기 전까지는 일정을 잡을 생각도 안 했을 거고

나중에 어떤 식으로 할지 답이 안 나올 상황이었을 텐데 

결국 걱정만 많은 내가 총대를 멘 거였고

 

총대를 멘 나만 구박받는 상황이 왔다

그동안 나는 요즘 회사일이 한가해서 

일찍 퇴근해서 대부분의 집안일을 다 했었다

하지만 사람이란 보상심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

 

나 역시 다르지 않았다

게임으로 내가 한 노동에 대해 보상받고 싶었고 

조금 쉬고 싶었다

 

하지만 남편은 그 게임을 별로 흥미 있어하지 않았고

우린 퇴근 후에 각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

 

매번 하는 집안일 이외에도

다양한 이벤트가 존재하기 나름이다

싱크대 청소라던지

물걸레질이라던지 

브레타 필터를 갈아준다던지

 

하지만 이런 건 나만 신경 쓰는 것 같다

평소에 하는 집안일이 끝나면 나도 솔직히 지쳐서

주말에 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

하지만 주말에 다른 일정이 있고

하고 싶은 게 있는데 그러다 보면 몇 주 밀린다

 

그동안 남편은 저 일들을 해주지 않는다

평소 집안일도 내가 해달라고 해야 하는 경우가 더 많다

 

그래서 그런가

난 어느 정도 남편이 날 편애해 주고 

잘해주길 바랐던 것 같다

 

이 역시 단순한 보상심리이고

나 혼자 멋대로 정한 

기댓값인 것 같다

 

내가 원하는 행동이 아니니까

나 혼자 기대하고 나 혼자 실망한 것 같다

 

어제부터 집에서 내가 말을 안 했다

카톡도 보지 않았고

특별한 답장도 하지 않았다

 

나 자신에게 꽃을 사줬다 

처음 있는 일이다

기분전환이 필요했다

 

사치라고는 잘 모르는 성격인데

안 하면 펑펑 울 것만 같았다

사실 퇴근길 지하철에서 혼자 울었다

 

남들 시선이 있으니 펑펑 울지도 못했고

내 감정을 내가 주체할 수 없어서

그저 눈물이 나더라

 

나는 시부모님이 말하는 피로연도 너무 신경 쓰여서

남편이 먼저 시부모님이랑 연락해서 정했으면 하는데

이번 주말에 과연 먼저 시부모님에게 언급할지 의문이다

 

피로연 일정이 있는 청첩장도 따로 뽑는 게 나을 것 같아서

먼저 얘기를 꺼내고 싶었는데

그러지도 못했다 내 기분이 너무 상하고 지쳐버려서

핑계일지도 모른다

 

이 외에도 본식 또한 어떤 식으로 진행할지 자세한 계획도 해야 하고

할 게 생각보다 많은데

남편이란 사람이 고민은 하고 있는지

또 나만 유난이라 예민한 건지 알 수가 없다

 

 

어제 산부인과 결과로 난소 나이가 37세라는 판정이 나왔다

무려 내 실제 나이보다 열 살이 많다

 

아이를 못 낳는다면 내 탓일 거라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다

그렇다고 해도 남편이 끝까지 내 편을 들어줄지

이젠 잘 모르겠다

 

원래는 당연히 내 편을 해줄 거라고

남들과 다를 거라고 생각했는데

 

결국 날 만만하게 여기고

좋게 말하면 편하게 여기는 사람이 남편이었다

 

우리 신혼집에 대한 시부모님의 불평불만도

결국 고집을 꺾지 않는 분들이라면

계속 얘기를 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는데

그 생각에 난 벌써 진절머리가 나는데

어쩔 수 없다고만 하는 남편을 내가 계속 의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

 

각자는 잘 못한 게 없다고 생각하는 이 불편하고 오묘한 냉전도

내가 굽히면 끝날 냉전이고

상대방은 내가 기분이 상했단 거 조차 고려하지 않을 것이기에

마음 한편이 씁쓸하다

 

그저 내가 참고 살면 되는 것일까

그럼 난 누가 챙겨주는 거지

이런 감정 또한 쉽사리 털어놓을 한 사람 없다는 게

날 비참하게 만든다.

728x90